2020.12.4 (금)
어른이 된다는 건 나 어른이요 라고 떠든다고 되는 게 아니야.
이 대사는 미생 4국에서 나온다. 미생 제작 발표회도 간 적 있는데, 미생을 여태까지 본 적이 없었다. 아 본 적이 있네. 일본에서 리메이크 했던 일본판 버전. 일본어 공부 하기위해서 봤던 것 같은데, 엄청 재미있지도 재미 없지도 않아서 그냥 끝까지 다 본 기억이 있다. 위에서 언급한 대사가 설거지를 하다가 머리에 멤돌았다. 그리고 내 나름 큰(?) 결심을 했다.
12월 9일, 10일 여자친구와 오오에도 온천에서 1박을 하기 위해 희망 휴가를 내놓은 상태였다. 원래 1박에 4만엔이나 하는 비싼 곳인데, 일본 정부의 go to travel 정책으로 2만 4천엔에 나름 저렴하게 갈 수 있어서 몇 개월 전부터 여자친구와 이야기를 해서 예약을 해놓았다. 하지만 이놈의 코로나는 제3파가 와서 제 1파, 제 2파 보다 더 강력한 영향을 끼치고 있고 이로 인해 감염자 수, 중증 환자 수가 급증하며 사면초가에 처지에 놓이게 됐다. 특히 오사카는 가장 피해를 많이 받고 있는 지역 중에 하나로, 결국 오사카부 지사 요시무라가 츠텐카쿠에 빨간등을 점등하며 자숙을 오사카부 국민들에게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그 결과, 여자친구네 부모님도 결혼기념일로 12월에 여행을 가기로 했는데 결국 취소를 하고 부모님이 그렇게 취소를 했는데 자기도 가기 어렵다는 식의 말을 돌려서 했다.
여전히 적응되지 않은 매장, 크리스마스, 오세보, 연초 맞이 등 선물 포장으로 바쁜 이때 내 유일한 낙이 여자친구와 1박하러 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여자친구가 가기 어렵다는 식의 의사를 내비치자 오늘 여자친구를 만나면서 성은 나지 않았지만 가자고 어린 아이처럼 졸라댔다. 내 딴에는 이해가 되지 않은 부분도 있었다. 부모님은 부모님이고 여자친구는 여자친구이다. 20대면 이제 자기가 생각해서 자기가 자유롭게 판단한다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는데 부모님이 걱정하니깐 이라는 식으로 이야기한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다. 하지만 4살이나 어린 여자친구 앞에서, 왜 그렇게 밖에 생각을 못하느냐 가면 되지 않으냐 라고 말하는 내 모습을 회상하며, 미생에서 들은 대사와 중첩되었다.
"아 나는 여자친구 앞에서 어른인 척하면서 갖은 폼을 다 잡았는데, 내년에 벌써 30인데 여전히 어른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설거지를 하면서 들었다. 설거지를 끝내고, 핸드폰을 들어 여자친구에게 이야기했다.
"정말 가고 싶은데, 지금은 어쩔 수 없구나 내가 참을 수밖에 없네. 다음에 가자"
이에 여자친구도 너무 가고 싶은데, 못가게 돼서 미안하다고 침울해했다. 그래. 그 누구의 탓도 아니다. 이런 상황이 될 줄 누가 알았는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세상이 더 좋은 세상이 되기 위해서 바꿔 나가고 싶지만, 한낱의 평범한 인간인 코로나를 거스를 수 있겠는가. 그러려니. 세상 탓, 여자친구의 부모님 탓, 여자친구 탓 하지 말고 그냥 이렇게 되어버린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 그나저나 12월 9일, 10일은 무엇을 할까. 몸 상태가 별로 안좋은데, 그때까지 빨리 낫기나 했으면 좋겠다. 낫지 않으면 집에서 푹 쉬어야지. 그게 남는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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