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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내가 내일이 된다 (3편) 경험주의자의 일본살이 - 일본의 지하철 풍경

도쿄뱅 2020. 10. 2.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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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내가 내일이 된다 (3편) 경험주의자의 일본살이 - 일본의 지하철 풍경


 

일본의 인구 수는?

 

 

 

정답은 1,억 2650만명 정도이다. 한국의 두 배 이상. 국토 면적은 일본이 한국보다 대략 4배 넓다.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 싶으면, 일본도 꽤 밀집도가 높은 편이다. 특히 일본의 수도 도쿄의 경우에는, 사람이 미어터진다는 말을 체감할 수 있다. (중국을 가보지 않아서, 어떤 느낌인지는 잘 모르겠다.) 도쿄의 신주쿠역만 가봐도 사람이 정말, 엄청 많다. 대학교 1학년 시절 신도림에 자주 놀러 간 적이 있는데, 사람이 북적북적거리는 신도림을 뛰어넘는 인파다. 출퇴근시간만 되면, 불꽃 축제 끝나고 집에 돌아가는 지하철 타는 느낌으로 숨막힐도록 꽉 찬 사람들에 치이며 집에 돌아간다. 도쿄에 살면서 왜 사람들이 도시에 살면 삭막해지는, 그리고 사람들에게 증오를 느끼게 되는지 뼈저리게 느꼈다. 

 

 

지금은 오사카에서 살고 있는데, 도쿄보다는 지옥철은 아니다. 그리고 나는 업계 특성상 시프트제이기 때문에 9시 출근 이런 개념이 아니라 10:45 출근, 12시 출근와 같은 개념이라서 비교적 한산할 때 출근을 하고 있다. 그렇게 한산한 지하철을 타면서, 사람들을 가끔씩 관찰할 때가 있다. 일본 지하철은 조용한 편이다. 지인들끼리 앉아서 떠들기도 하지만, 이 조용함에는 역시 전화 통화가 금지라는 것이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것 같다. 만약 전화가 걸려오더라도, 지금 지하철 타고 있으니 내리면 전화를 한다거나 아에 전화를 받지 않는다. 나는 지하철 내 전화 통화 관련하여 꽤 충격적인 사건을 지켜본 적이 있다.

 

 

한 남자가 지하철에서 서서 전화를 하고 있었고, 그 앞에 앉아 있던 남자가 기분이 거슬리는 듯이 계속 그의 얼굴을 쳐다보기를 반복했다. 그러다가 앉아있던 남자는 결국 화를 참지 못하고 전화를 하고 있는 남자를 넘어뜨린다. 그리고 큰 싸움으로 번지는가 싶더니 말싸움을 하기 시작했다. 앉아 있던 사람은 왜 지하철에서 전화를 하느냐고 迷惑(민폐)라고 하며 화를 냈다. 그리고 전화를 하던 사람은 전화를 끊고, 내가 전화를 하든 말든 무슨 상관이냐고 다음 역에서 내리라고 당신 때문에 넘어져서 허리가 아프다고 신고하겠다며 소리를 질렀다.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그들에게 주목하게 되었고, 나도 꽤 인상적으로 이 일을 지켜보았다. 그 사건의 끝은 어떻게 됐는지 알 수 없지만, 그 이후로 전철 내 전화에 대해 일본인들이 얼마나 예민하게 생각하는지 느낄 수 있는 부분이었다.

 

일본도 한국처럼, 전철을 타면 다들 스마트폰을 보고 있다. 한국에 카카오톡이 있다면 일본에는 라인이 있다. 사람들과 라인을 하거나, 게임을 하거나 한국인들은 많이 안하지만 트위터를 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리고 재미있던 것이 책에 관련한 것이다. 출판 대국답게 책을 좋아하는 일본인이 많다. 지하철에서도 책을 열심히 읽는 사람들도 많은데, 재미있는 것은 거의 90%이상 책의 표지가 다른 종이로 커버되어 있어서 그 사람이 어떤 책을 읽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대충 그 이유가 짐작 가는데, 인터넷에 검색한 결과 다음과 같다.

 

ブックカバーは、日本人の国民性の現れ?日本の書店でブックカバーをかける習慣は、大正時代に始まったといわれています。お店の宣伝として、また会計が済んだ本であることが分かるようにと、書店オリジナルデザインの紙を使って本を包んだことがブックカバーの始まりになったのだとか。日本ではなじみのあるブックカバーですが、英語でブックカバーに当たる言葉はなく、実は海外ではこのようなサービスが行われていません。では、なぜ日本ではブックカバーが重宝されるのでしょうか? 「本をきれいに保ちたい」「どんな本を読んでいるのか知られたくない」といったことが理由として挙げられ、日本人のきれい好きや恥ずかしがりやである国民性を象徴しているのかもしれません。ブックカバーは、日本独自のものというように、日本文化と異文化を比較しながら、相互に理解しあえるような基盤づくりをめざす学問を「比較文化学」といいます。比較研究する文化の内容としては、歴史、言葉、芸術、ライフスタイルなどさまざま。ブックカバーの文化をきっかけに、日本と海外の文化の比較に興味を持った人は、比較文化学を学ぶことで、さまざまな文化の違いを学ぶことができるはずです。また、ブックカバーのデザインや図柄に関心がある人は、「デザイン」について学んでみてはいかがでしょうか。デザインの知識や技術で、親しみやすいデザインのブックカバーを生み出すことができれば、読書をさらに楽しめるかもしれません。
ブックカバーを付け替えるだけでいつもと違う新鮮な気持ちで本と向き合えるように、私たちにとってブックカバーは読書生活を充実させる大事な存在ともいえます。ブックカバーの文化やデザインに興味を持った人は、このような奥深いブックカバーづくりの世界について、ぜひ詳しく調べてみてくださいね。

출처 : https://mikata.shingaku.mynavi.jp/article/36123/

 

위를 해석하자면 다음과 같다. 북커버는 일본인의 국민성을 대변? 일본의 서점에서 북커버를 씌우는 습관은 다이쇼 시대 (1912-1926)에 시작되었다고 한다. 서점의 선전으로서, 또는 계산이 끝났다는 책이라는 것이 알기 쉽도록, 서점의 오리지널 디자인의 종이를 사용하고 책을 덮은 것이 북 커버의 시초가 되었다. 일본에서는 어디서든 쉽게 볼 수 있는 북커버가, 영어로 북커버에 해당하는 단어가 없고 사실은 해외에서는 이러한 서비스가 행해지지 않는다. 그러면 왜 일본에서는 북커버가 중요시되는가? 

 

책을 깨끗하게 간직하고 싶어서, 어떤 책을 읽고 있는지 알려지고 싶지 않아서 라는 이유로 들 수 있고, 일본인의 깨끗함을 좋아하는 것이나 부끄러움이 많은 국민성을 상징하고 있는 것는지 모른다.

 

(중략)

 

그렇다. 이 북 커버는 깨끗함을 좋아하고 부끄러움이 많은 일본인들의 국민성의 발현인 것이다. 나도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해서 일본 서점에 가면 항상 점원이 묻는다.

 

"북 커버 씌어드릴까요?"

 

하지만 항상 나의 대답은 괜찮아요. 한국에는 이런 문화가 없다. 내가 무엇을 읽고 있던 그것이 사람들에게 알려져도 별 상관이 없고, 한국에도 깨끗하게 책을 읽는 사람이 많지만, 굳이 북 커버까지 씌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무척 세심한(?) 서비스 문화가 일본 여기저기에 존재한다. 백화점에서도, 한국 백화점에 가면 그냥 산 물건을 쇼핑백에 넣어주는 것에서 끝나는데 일본은 얇은 종이로 그 상품을 포장해서 넣어준다. 이것이 집에 가서 바로 찢고 버릴 종이라고 하더라도. 어떻게 보면 서비스 문화가 무척 꼼꼼하게 되어 있는 것 같지만, 그만큼 자원을 비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단점도 느껴졌다. 이번에 총리가 바뀌면서 無駄をなくす 즉 불필요한 것을 없앤다고 일본도 이러한 문화를 점점 바꾸려고 노력한다는데, 어디까지 바뀔지 의문이긴 하다. 

 

일본의 지하철과 관련하여 또 다른 인상적인 테마가, 優先席 즉 우선석이다. 한국으로 치면 노약자석이다.

한국에서 청년이 노약자석에 앉으면 어떻게 될까? 난리도 그냥 난리도 아니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화를 낸다. "젊은 놈이 왜 여기 앉아" 이런 식으로. 아무리 다리가 아프더라도, 텅빈 노약자석에는 앉지 못한다. 이게 한국의 보이지 않는 공기 아닐까 싶기도 하다. 아무튼, 일본은 그러한 구분이 없다. 물론 노약자석이니깐 앉으면 안돼 라는 인식을 가진 사람도 있겠지만, 별로 그러한 것을 일일이 따지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 흔히, 젊은 사람들도 노약자석에 앉아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오히려 노인들이 서 있는 상황도 많이 봤다. 또 그렇다고 해도 노인들이 화를 내고 그러지는 않는다. 물론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그러한 어르신들을 보고 자리를 양보하는 사람이 일본에도 존재한다. 노약자석에 앉아 있거나 일반 좌석에 앉아 있는 것을 상관하지 않고. 하지만 한국과 비교해서는 그런 문화가 발달되어 있지는 않은 느낌이었다. 한국은 앞에 노인들이 계시면 양보하는 문화가 마치 당연한 것처럼 되어 있다.

 

일본인이 전철에서 노인에게 좌석을 양보하지 않은 진짜 이유?! 라는 표제의 기사

한국에서 대학 생활을 보내고 있을 때 심지어는 나처럼 일반석에 앉아 있는데도, 어른들이 자리를 비켜달라고 자고 있는 나를 깨운 적이 있다. 그런 면에서 나는 일본의 지하철 문화가 마음에 들었다. 양보라는 것은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이지 의무가 아닌데 너무 당연시 되어 있는 한국 지하철 문화.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당연히 대접을 받아야한다는 생각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서 그렇다면 왜 일본인들은 전철에서 노인들에게 좌석을 양보하지 않는 것일까? 일본도 대표적인 아시아권 국가이고, 자연스럽게 유교 문화의 영향을 받아서 일본에도 예의범절이라는 것이 있고, 노인을 공경한다. 인터넷에서 찾아본 결과, 양보를 하지 않은 이유는 다음과 같다. (이 의견이 반드시 정답은 아니다)

 

첫 번째 의견이, 자신이 양보를 하면 주변에 앉아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 민폐라서. 몇 번이고 이야기 했지만 일본은 공기 사회이다. 남들과 다른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좋아하는 사회 분위기가 아니다. 和 일본을 이 와국이라고 하는 것도 비슷하다. 와에서 벗어나면 잘못된 것이고 와를 항상 지켜야하는 것이다. 내가 양보하면 다른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자신은 양보하지 않았다는 생각을 심어주기 때문에 일부러 노인들에게 양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두 번째 의견이, 노인이 자신은 노인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양보하는 것으로 인해 괜한 친절을 베푸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내가 베푼 선의가, 그 사람에게 반드시 선의가 될 지 안 될 지는 모르기 때문에 양보하는 것에 주저하게 되고 결국 양보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이게 어떤 사람에게는 일본이 양보하지 않는, 보이지 않는 친절함. 아름다움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너무 생각이 지나치는 것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정답은 없다. 생각의 자유다. 하지만 무작정 왜 양보 하지 않아 -> 예의가 없는 나라 => 이상한 나라 라는 인식은 정말 초등학생과 별반 다를 것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어느 정도 문화적인 이해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국어국문학과를 전공하면서, 배운 수업 중에 여전히 기억에 남는 수업이 '비교 문학의 이해'이다. 여기서 비교란 어떤 문화가 어떤 문화보다 우월하다 우수성의 여부가 아니라, 이런 문화랑 이런 문화가 차이가 있고, 이런 특징이 있다는 식으로 이해해야한다고 배웠다. 한국이 양보 문화가 발달되어 있기 때문에 이와 관련해서 일본보다 우위에 있다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 누군가에는 그 양보가 부담이 될 수도 있고, 나처럼 편히 쉬고 싶은데 자리를 빼앗겨버리는(?) 솔직히 좋지 않은 경험을 할 수도 있다. (말 그대로 강제 양보) 내가 일본에 대해 쓰는 글도 그러한 문화의 차이, 문화의 이해의 관점에서 많이 읽어 주셨으면 좋겠다. 

 

 


오늘의 내가 내일이 된다 (3편) 경험주의자의 일본살이 - 일본의 지하철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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