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이야기/일희일우 (一喜一憂)

아파보니

도쿄뱅 2019. 11. 12.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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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12

 

일본에 온지 대략 7개월. 

숙취, 감기 등으로 조금조금씩 아팠지만 하루 쉬면 자연스럽게 나았다. 근데, 3일전 일어나보니 잇몸이 부어있고 목이 아팠다. 설마, 내가 가장 무서워하는 병인 편도선염인가? 이 때를 대비해서 한국에서 약을 타왔고 그 약을 먹으면서 괜찮아질 줄 알았다. 괜찮아질 줄 알았는데, 그 날 저녁 가을바람이 유독 세찼고 오한이 느껴졌다. 집에 들어와 라면을 끓여 먹는데 식욕도 없고 자극적인 라면을 먹어서 그런지 목이 따가왔다. 일주일의 낙이라고 생각하는, 신서유기 7을 보면서도 재미를 못느낄 정도로 몸 상태가 너무 안좋았다. 그날 저녁은 말 그대로 땀범벅이 될 정도로 땀을 엄청 흘리며 선잠을 잤다. 다행스럽게, 다음날 휴일이어서 계속 쉬었지만 약을 먹고 대략 3시간까지만 효과가 있었고 상태는 계속 악화되어갔다. 결국 다음날, 출근을 해야하지만 유급휴가를 내고 병원을 가서 링겔을 맞았다. 

 

역시 병원을 가야하나 보다. 

링겔을 맞고 약을 먹으니 상태가 훨씬 호전되었다. 다음 날 일해도 전혀 무리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너무 얕잡아봤나보다. 면역력이 너무 낮아졌는지 입술에 헤르페스가 생겼고 오늘 일어나보니 잇몸이 또 부어있었다. 여전히 귀는 찌릿찌릿 아프고, 잇몸이 뇌랑 연결되어있는지 왼쪽 잇몸쪽 자뇌가 계속 찌릿찌릿아프다. 아, 그냥 좋은 일, 힘든 일 없이 그냥 무던하게 지나가는 것도 너무 좋은 것이었구나. 너무 아파보니 새삼스럽게 또 깨닫는다. 욕심 부리면서 억척같이 살아가지만, 아프고 나니 다 부질 없다. 그냥 건강하게 최고라고 느껴진다. 그냥 몸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게 가장 큰 행복이라고. 

 

아프면, 서러운 건 나다.

외국에 있으니 더 느껴진다. 가족에게 기댈 수 없고, 가족의 걱정은 나의 서러움을 전혀 덜어주지 못한다. 오히려 행복하게 놀고 있는 모습에 더 서러움만 생긴다. 나는 이렇게 아픈데... 막내라 어릴 적부터 투정이 많아서 그런가? 

 

아파보니..

아파보니 내가 어떻게 인간관계를 맺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헬스를 7년 동안해왔고, 운동을 하면서 어릴 적보다는 몸이 건강해졌다고 느꼈다. 하지만 여전히 잔병치레가 많을 걸보니 기질 자체가 약한 편인 것 같다. 몸이 약하니, 규칙적인 생활을 해야했고 내 규칙적인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사람들과의 거리가 필요했다. 나를 지키기 위해서. 사람들과 노는게 좋은데, 사람마다 여러 습관을 갖고 있기 때문에 결국 규칙적인 생활은 깨지기일 수 였다. 규칙적인 생활을 깨고, 예를 들어 과음을 한다든지 밤 늦게까지 논다든지 하면 어느 순간 결국 탈이 났다. 숙취, 결막염, 편도선염 등등. 이번에 이를 확실히 깨달았다. 나를 지키기 위해서는 사람들과 거리를 두고 나를 지킬 수밖에 없다고. 나의 규칙적인 원을 선을, 지켜야한다고. 거절을 해야한다고. 과연에 이번에 편도선염은 왜 생겼을까?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새로 생긴 여자친구랑 거의 매일 놀았는데 내 몸이 피로함을 느껴도 계속 만났고 그렇게 노력하고 있음 느꼈다. 몸이 무리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계속 무리를 했고 그 결과 며칠간 끙끙 앓아눕는 신세가 된 것이다.

 

여자친구 탓이냐?

여자친구 탓이 아니다. 난 사람들한테 상처를 받지 않기 위해 사람과의 선을 긋고 유지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에 아파보니, 사람과 깊게 사귀면서 내 규칙적인 생활이 깨질까봐 선을 긋고 있었던 것이다. 거절을 잘하지 못하는 내가, 사람한테 맞추기를 잘하는 내가, 그러다 보면 또 잔병치레를 해야할 게 분명하기 때문에 28살인 나의 몸과 정신은 자동적으로 그런 나를 거부하고 나한테 계속 신호를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나를 지키자.

뭐, 물론 정이 많은 나라서, 덜 상처 받을려고 선을 그은 것도 없지 않아 있을 것이다. 사람은 아주 복잡한 동물이니깐. 그런데 이번 계기로 또 느꼈다. 무리하지말자. 무리하면 몸에서 신호가 온다. 나를 지키자. 신호를 무시하지말고 나를 지키자. 아파도 이 글을 쓰고 싶었던 이유도 결국 이 말을 쓰고 싶었던 것이다. 난 나를 사랑한다. 난 나로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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